-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2020/독후감 2020. 8. 22. 02:11
뭔가 완성적인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의미로 부제도 안 붙였다. 아무튼 왜 그런 느낌을 받았냐면,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 지금의 내가 창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건 다 한 번씩 배워보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히 나야 부족한 사람이라 배울 게 차고 넘친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알바조차도 안 해본, 완전 놀고 먹는 대학생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배우는 데에 한계가 있다. 게임으로 치면 이제 지금 단계에서는 경험치가 다 찬 거다. 다음 단계로 진화해야 경험치를 더 채울 수 있다.
책은 스티브잡스의 처음부터 죽기 얼마 전까지를 다루고 있다. 영웅 소설같다.
주인공의 비극적인 탄생 =>
인자한 양부모 밑에서 잘 큼 =>
어린 나이에 천재성을 발현 =>
파트너를 만나 공적을 이룸(애플 컴퓨터) =>
오만함으로 인해 황야로 퇴출당함 =>
절망했지만 다시 기운을 차리고 활동하기 시작 =>
그럼에도 일이 잘 되지는 않았음.(넥스트) =>
그러나 귀인(픽사)을 만나 서로의 힘을 합쳐 재기에 성공 =>
성장한 모습으로 자기 나라로 돌아감(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는 형식으로 복귀함. 망한 줄 알았던 넥스트가 이렇게 쓰이다니 떡밥ㄷㄷ) =>
파죽지세로 왕좌를 탈환 =>
망조를 띠던 나라를 정리하고 재건국 =>
세상에 일대의 혁신을 일으킴 =>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에 퇴장떡밥도 다 회수하고, 아주 잘 짜여진 플롯이다. 그런데 이게 현대에 실존하던 인물의 스토리라는 게 참으로 놀랍다.
아래는 느낀 점.
1. 내 DNA를 이식한 기업을 만들고 싶다.
내 유전자가 박힌 기업.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태도대로 행동하는 기업. 이 정도면 호랑이 가죽보다 멋있는 걸 남기고 죽을 수 있겠다.
단순히 멋 말고, 그 기업을 통해 나와 잘 통하는 사람들을 모아 만날 수 있다는 커다란 혜택도 있다.
2. 예술 작품이 만들고 싶다
내 취향을 적극 반영한 그리고 완벽을 기하는, 제품이지만 동시에 작품인 걸 만들고 싶다.
이런 건 하드웨어여야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소프트웨어는 사용 중에도 수정이 가능해서 처음부터 너무 완벽을 기하면 오히려 시간 손해이기 때문이다. 반면, 하드웨어는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출시하는 게 덕목이다. 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가는 소프트웨어도 어떻게 보면 예술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제품이 예술 작품이 되는 데에 핵심은 역시 '내 취향대로 만드는 것'에 있겠다.
그런데 사실 사업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걸 하는 거다. 그렇다. 역시 고객이 제일 중요하긴 하다.
그렇지만 나는 믿는다. 고객이 좋아하는 동시에 나도 좋아하는 제품이어야만 브랜드가 탄생한다고. 고객의 입에서 Awsome이란 말이 나오려면, 먼저 내 입에서 Awsome이 나와야 한다고. 그리고 그런 걸 만들어야 우리가 뿌듯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3. 디자인은 단순하면서도 재밌게, 따뜻하게
나는 디자인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심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능에 있어서 필요 없는 건 다 없애버리려고 했다. 물론 심플한 건 낫 심플한 것보다 훨 좋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도 있다. 조너선 아이브를 보자.
조너선 아이브는 아이맥에 손잡이를 달더라. 컴퓨터에 손잡이를 달면 거의 쓸모가 없다. 기능에 있어서는 필요가 없는 거다. 그렇지만 사용을 기준으로는 있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손잡이를 덕분에 애플이 주고 싶었던 감성을 더 잘 느끼게 될 수 있다면 손잡이는 사용감에 있어서 필요한 거다.
형태적인 단순함.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재미와 따뜻함, 이런 감성을 담아야 한다.
미켈란젤로는 바위 속에 영혼이 있고 자신은 단지 그걸 꺼내는 것 뿐이라고 했다. 이게 디자인인가보다. 감성, 영혼, 철학. 이런 걸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형태를 만드는 것. 이건가보다.
4. 존속하는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계속 그대로일 것 같은 분야에서마저도.
HP. 나는 그 회사 제품은 프린터밖에 모르겠다. 그런데 예전에는 어마어마한 기술 회사였나보다. 아직 존속하고는 있지만 전성기라고 할 수는 없겠다.
대박 제품 하나를 내면 많은 세월을 버틸 수 있다. 그렇지만 영원한 건 아니다. 그 제품이 잊혀지기 전에 다시 새로운 대박 제품을 내야 회사는 존속할 수 있다.
언론사도 신문에서 디지털로 바뀌어야 한다. 필름 회사도 필름에서 무엇으로든 바뀌어야 한다.
바뀌는 건 선택이 아니다. 바뀌지 않으면 죽는다.
5. 인문학과 기술의 연결
뭔가 두근두근거리는 말이긴 한데, 너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B2C기업이면 기술만 가지고 사업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배달의민족은 음식과 기술, 스타일쉐어는 패션과 기술, 마이리얼트립은 여행과 기술 이렇게 다 연결돼있는 거 아닌가?
어쩌면 예시로 쓴 기업들은 모두 잘 하고 있는 기업들이라 인문학과 기술이 연결돼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내가 구독 관리 앱을 만든다면 기술과 무엇이 연결돼있다고 할 수 있을까? 바로 생각나는 건 없다. 적당한 말을 갖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별 의미 없다. 그래도 적당한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말이라면 연결지을 수도 있겠다. 흠.. 뭐 예를 들어 구독 관리 앱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구독한 콘텐츠들을 저장해놓겠다.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다른 사람들의 리뷰도 바로 볼 수 있게 하겠다.라고 하면 '콘텐츠와 기술'이라고 연결지을 수 있겠다.
결국 인문학과 기술의 연결이라는 것도 기업의 철학을 얘기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당신의 기업은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게 해주나요?', '당신의 제품은 감히 프로메테우스의 불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가요?'
6. 엔드 투 엔드
제품을 최대한 우리 기술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왜냐? 고객이 우리 제품을 쓰면서 허접한 타기업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애플 말고 이렇게 성공한 기업이 있나? 통념 상으로는 여러 기업과 교류해야 효율적이다. 경제학적으로 분업이 이득이니까. 뿐만 아니라 개방이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애플은 엔드 투 엔드를 고집했고 결국 이득까지 보더라. 아이팟과 아이튠즈로 애플 제품을 이용하게 만들었고, 그 뒤에도 점차 애플 생태계를 만들어나갔다.
그럼 이게 치사한 상술이냐? 꼭 그렇지는 않다. 상술적으로 이득을 보기는 했는데, 애플 소비자에게는 엔드 투 엔드가 효용을 주는 것 같긴 하다. 일단 애플 제품 기능의 대부분을 애플이 직접 만들었으니까 통일성이 높다. 그러니까 사용하기 편리하다. 그리고 자신이 일단 애플 제품을 쓰고 있으면, 다른 카테고리의 물건을 살 때 그냥 애플로 사면 된다. 그래도 무조건 호환될테니까. 나도 애플 제품을 써보지는 않아서 사실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Just Use It
엔드 투 엔드라는 게 언제 고집해야 좋은 건지 그런 건 모르겠다. 그냥 최근에 엔드 투 엔드면 좋겠다고 생각한 서비스 하나만 말해보겠다. 저번 주에 치킨을 시켜먹었다. 배민으로 시켰다. 그런데 불친절한 라이더분이 오지 않을까하고 약간 걱정됐다. 이때 라이더분이 내가 시킨 치킨집 소속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라이더분이 식당의 이름을 생각해서라도 불친절하게 굴지는 않겠지 싶었기에 그렇다. 이런 걸 보면 엔드 투 엔드가 필요한 부분이 분명 있긴 한 것 같다.
7. 음악의 소유!!!!
아이튠즈가 처음 나왔을 때 스트리밍(구독)은 없었고 음악 구매만 있었다. 이건 책의 구절을 그대로 옮겨와보겠다.
잡스는 이 방식(음악 개별 구매)이 음반사가 선호하는 월 단위 가입형 모델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 정서적 유대감을 느낀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옳은 견해였다.) 그들은 Sympathy for the Devil이나 Shelter from the Storn같은 노래를 빌리기보다는 '소유'하고 싶어 했다.
이 구절 뒤에는 잡스가 가입형 서비스는 주류가 되지 못할 거라고 한다. 그건 틀리긴 했다. 그래도 나는 이 '소유'에 대한 견해에 아주 공감한다.
나는 요즘에도 곡들을 구매해서 폰에 다운받아 놓는다. 이러면 기분이 좋다.(조크등요ㅎ) 음악이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들고, 예쁜 앨범아트도 내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음악에 대해 좀 더 진지해진다. 음악을 다운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한 번에 30곡 정도를 다운받는데 꽤 적은 숫자다. 이러려면 무슨 음악을 고를지 굉장히 숙고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어떤 음악이 나에게 중요한지, 필요할지 생각하게 되고 선택한 음악에 대해 더 애정을 갖게 된다.
사실 이런 걸 노리고 곡들을 구매하기 시작한 건 아니다. 청소년은 돈이 없어서 그렇다. 음악은 듣고 싶은데 매달 스트리밍 돌릴 돈은 없으니까 한 번 다운받아놓고 주구장창 듣는 거다. 그런데 음악을 선정하는 과정이 되게 재밌더라.
요즘은 정말 스트리밍이 대세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런 소유의 느낌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스트리밍보다는 무거운, 음반보다는 가벼운. 음원 다운로드로.
8. 애플은 회사 전체적으로 손익 계정을 하나만 운용한다. 아메바 경영의 반대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각 부서마다 자신만의 손익 계정을 운용하도록 한다. 그럼으로써 각 부서장이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거다. 이 방식으로 교세라는 효과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애플은 정 반대로 회사에 하나의 손익 계정만을 운용한다. 각 부서가 경쟁만 하고 협동하지 못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아이팟의 경우, 애플은 부서 간 협력이 잘 돼서 아이팟을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소니는 협동에 실패해서 기술이 있었음에도 아이팟 같은 기계를 만들 수 없었다.
흠 뭐가 좋은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정 반대의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둘 다 잘 됐으니 흥미로운 포인트다. 역시 '뭐가 좋은 지는 회사에 따라 다르다'가 모범적인 대답이긴 할 것이다.
9. 직접 만나는 것에서 창의성이 나온다.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재택근무에 반대한다. 물론 어쩌다 하는 거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하는 건 괜찮다. 그렇지만 상시 재택근무같은 건 싫다. 집에서 혼자 일 하면 대체 무슨 재미인가. 다른 삶의 재미들이 그렇듯이 일의 재미도 많은 부분이 사람에 의지한다. 집에서 화상 회의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매우 있다. VR이 엄청 발달하지 않는 한, 꼭 한 공간에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주장이 힘을 얻으려면 회사가 가고 싶은 곳이어야만 한다. 그러려면 같이 지내고 싶은 사람들로만 채용하는 것, 좋은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먼저 충족돼야겠지.
10. 일부러 논쟁을 벌이려고 반대 입장을 취한다.
나는 사람들 의견에 거의 반대를 안 한다. 반대를 한 두 번 해도, 상대가 계속 고집하면 그냥 그 의견대로 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릴 때는 달랐던 것 같다. 아마 지적하고 트집 잡는 걸 좋아했었다. 토론도 좋아했고. 그러다가 사회에 적응하려고 자제하다보니 안 하게 된 것 같다. 상대의 의견을 지적할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너무 공격적이 될 것 같아서 관두게 됐다. 덕분에 사회에는 적응됐지만, 토론하기는 힘들어졌다.
토론을 잘 하면 좋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은 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진짜로 필요를 좀 느낀다. 내가 팀원과 의견이 다르다고 치자. 내가 적당히 져주면, 내가 그 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까? 그게 된다고 쳐도 내가 계속 져준다면 결국 제대로 된 작품은 나오기 힘들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사람끼리 의견이 다른 경우는 매우 많다는 거다. 그러니까 토론은 정말 필수다. 그래서 좀 공격적이 되더라도 상대의 의견을 '까는' 걸 다시 익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이런 걸 수용할 사람들과만 함께해야겠지.
아, 일부러 논쟁을 벌이려고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 이거는 내가 가까운 몇몇 사람들한테는 하는 듯? 상대가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그럴 때도 있고, 나중에 내가 어느 입장이든 취할 수 있게 미리 구멍을 파놓으려는 경우도 있다.
11. 그 자신이 예민해서 효율적으로 상처입히는 법을 안다.
흠 나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굳이 사람들을 상처 입힐 필요는 없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조심하자. 화가 잔뜩 날 때도 꼭 조심하자.
12. '소비자가 좋아하니까'보다 '내가 좋아하니까'가 더 큰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한테 필요하니까'가 아니라, '나한테 필요하니까' 제품을 만들 수도 있다. 나도 사람들의 일부니까 나한테 필요하면 비슷한 사람들한테 필요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런 경우 디테일이 살아있을 확률이 더 높다. 그러면 브랜드가 만들어지는겨.
'내가 걍 만들고 싶으니까'랑은 헷갈리지 말도록. 그런 경우는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냥 아이디어가 참신해서 만들어보고 싶은 건데, 필요한 게 아니니까 망할 확률이 높다.
이런 건 스티브 잡스같은 천재나 되는 거지~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수 많은 밴드들이 자기 취향으로 성공한 걸 보면 이게 꼭 불가능한 건 아니다. 물론 쉽지야 않지만 도전해볼 만은 하다.
13. 통합성과 D2C
삼분의일이나 와이즐리 같이 자기 제품을 마트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직접(Direct) 파는 걸 D2C라고 하는 듯. 이것도 일종의 엔드 투 엔드라고 볼 수 있겠다. (유통비 절감이 목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 나이키도 고객 경험인가 데이터인가를 이유로 아마존에서 나간 걸로 안다.
14. 나도 물고기가 탈 수 있을 만큼 큰 고래가 되고 싶다.
애플이 아이폰이랑 앱스토어 만들어서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탄생했다. 이건 뭐 물고기가 타는 고래 수준이 아니라 거의 인도 신화에 나오는 지구급(코끼리 위에 뱀 위에 뭐 위에 뭐뭐뭐... 그런 거)
나도 그런 인프라같은 걸 깔면 정말 뿌듯할 듯.
15. 선택의 가짓수를 줄임으로써 소비자 경험을 좋게 만들었다.
예쓰, 대부분의 경우 선택하는 거 귀찮다. 알아서 좀 해주라.
+ 민음사는 명작 소설들을 많이 출판해줘서 원래도 친근한 출판사였는데, 스티브 잡스까지 출판한 걸 보니 그냥 출판사 중에 제일 좋다.
'2020 >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베르토 사보이아의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나에게 맞는 놈 (0) 2020.07.27 [테라오 겐의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비즈니스와 아티스트 (0) 2020.07.22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사업하는가'] 열망은 그 자체로 능력이다 (0) 2020.07.09 [유자와 쓰요시의 '어느 날 400억 원의 빚을 진 남자'] 일점돌파 전면전개 (0) 2020.07.05 [켄 시걸의 미친듯이 심플] 미친듯이 반복하는 책 (0) 2020.07.03